그곳에서 태어나고 23년을 살았던 곳. 한.반.도.
'울음소리로 웅장한 한반도' 를 저에게 남겨준,
매우 긴 시이지만 꼭꼭 눌러 적어봅니다. ^^
한반도 시편
고은
우리 한반도에서는 새가 노래한다고 말하지 않고
새가 운다고 말한다
어느 때는 노래가 울음이었고
그 어느 때는
싸잡아 울음이 노래였다
심지어는
마을마다 한두 마리 도야지까지도
꿀꿀꿀 운다고 말해야 한다
그렇기도 하겠다
막 태어난 갓난아기 시뻘건 볼기 때려
응애
응애
응애
그 첫울음소리가
어찌 슬픔이겠느냐
허나 갓난아기가 운다고 말한다
봄이 부산 떨다가 가고 있다
아직 으슬으슬
이어갈이 모내기 마친 논마다
밤새도록
몇 천 마리 개구리들이 울고 있다
어떤 생각
어떤 느낌 하나 없이
오로지 그 울음소리 자체로 떠나려가고 있다
밤새도록
한여름이다
불볕 땡볕 가득히
여기서도 저기서도 울어대고 있다
매미 울음소리
그것 하나만으로도
하루가 저무는 까닭이었다
그러다가 구죽죽이 비라도 오는 날에는
비에 젖은
뻐꾸기 울음소리
뻐꾸기는 간데없고
그 울음소리만 빈 골짜기 가득 차 있다
어느덧 가을 귀뚜라미
달빛 시린 울음소리
달 진 뒤
그 어둠 속 새로운 울음소리
단 하나로
온 세상이 빛나고 있다
이때인가
여인아
그대만이 이 나라의 신령이더냐
겨울이 왔노라고
한밤중
얼어붙은 고요
그 깊디깊은 하늘의 우물 속에서
떨어지는 기러기 울음소리
잠들어 다 듣고 있거라
잠들지 않고 듣고 있거라
그럴진대 바다 복판 멈출 줄 모르는 노도인들
어찌 바다가 운다고 하지 않겠느냐
아니 첩첩산중인들
사내들의 잠든 깃발인들 다시 펄럭대며
어찌 바람이 운다고 하지 않겠느냐
바람이 분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이렇게 우리는 떼지어 울어야 했다
떼지어
내놓아라
내놓아라 울부짓어
무쇳덩어리 녹여 앗 뜨거웠다
어디에 내가 있더냐
어디에 네가 있더냐
우리로서 갖가지 거짓을 물리쳐 울부짖어야 했다
천둥으로 우레로 귀청 찢어지도록 꽹과리 징소리로
허나 어찌 우리만이겠느냐
제각각 목쉬어 돌아가면
거기 먼저 가서
고즈넉이 기다리고 있는 내가 있다
죽은 뒤에도
다시 일어서서
거기 나를 기다리고 있는 네가 있다
몇 백 번이라도
짙푸른 피 뿜어내는 네가 있다
그러다가
사뭇 어리석음과 깨달음이 한 가지인 채
신새벽 쇠북이 울기 시작하면
다시 달려나와
웅성웅성 어둠 속 우리가 되었다
어디 지난 세월뿐이겠느냐
저기 비탈져 오는 미지의 세월마저
우리가 되어야 한다면
어찌 우리가 새로운 행렬의 금빛 우리가 아니겠느냐
개구리 울음소리
대낮 매미 울음소리와 더불어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와 더불어
기러기의 넋이 지나가는
그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울음소리의 진공과 더불어